매일 화장실 갈 때마다 피가 묻어나오거나, 앉았다 일어날 때 항문이 욱신거리는 통증. 생각만 해도 괴롭지만, 정작 약국에 가면 수십 가지 연고와 좌약 앞에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치질은 크게 내치핵(항문 안쪽 혈관 팽창), 외치핵(항문 바깥쪽 혈관 팽창), 치열(항문 점막 찢어짐) 세 가지로 나뉘며, 증상 위치와 종류에 따라 선택해야 할 약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통증 위치가 바깥쪽이면 연고, 안쪽이면 좌약이 기본 원칙입니다. 약국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은 가벼운 증상(1-2도 치핵, 급성 치열)에만 해당되며, 3도 이상의 심한 치핵이나 만성 치열, 치루(고름 터널)는 반드시 병원 진료가 필요합니다.
통증 위치가 바깥쪽인지, 안쪽인지가 먼저다
약국에서 치질약을 고를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아픈 부위가 항문 바깥쪽인지, 안쪽인지입니다. 이 질문 하나로 연고를 살지, 좌약을 살지가 결정됩니다.
- 외치핵이나 치열처럼 항문 주변 피부가 부어오르고 가려운 경우 → 연고(크림) 가 1차 선택입니다. 피부 표면에 직접 발라 국소 부위에 빠르게 작용합니다.
- 내치핵처럼 항문 안쪽이 아프고 배변 시 출혈이 있다면 → 좌약이 더 효과적입니다. 좌약은 항문 안쪽 깊숙이 삽입되어 점막을 통해 약 성분이 흡수됩니다.
연고가 필요한데 좌약을 사면 효과가 거의 없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증상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증상별로 알아보는 연고 성분 선택 가이드
약국 진열대에는 수십 가지 연고가 있지만, 성분별 특징만 알면 훨씬 쉽게 고를 수 있습니다.
통증이 심할 때 국소 마취제 계열
- 리도카인, 프라목신, 디부카인 성분이 대표적입니다.
- 배변 후 통증이 너무 심해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 효과적입니다. 효과는 30분-1시간 정도 지속되며, 하루 3-4회 사용 가능합니다.
- 프라목신(헤모렉스 크림) 은 항문에 상처가 있을 때도 다른 마취제보다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어 치열에 특히 좋습니다. 반면 상처가 없는 경우라면 리도카인이나 디부카인 성분이 좀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 다만 국소 마취제는 염증 자체를 치료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통증만 가려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기와 가려움이 심할 때 스테로이드 계열
- 하이드로코르티손, 프레드니솔론(레반에이치 주입연고) 성분이 포함됩니다.
- 강력한 항염 작용으로 부기와 가려움증을 빠르게 가라앉혀 줍니다.
- 주의: 스테로이드 제제는 7일 이내로만 사용해야 합니다. 장기 사용 시 피부가 얇아지거나 국소 면역력이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고름이 있는 상처나 심한 상처 부위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부종과 울혈을 잡을 때 혈관 수축제 + 복합 성분
- 페닐에프린(푸레파연고) 성분이 부어 있는 혈관을 수축시켜 부종과 울혈(피가 모인 상태)을 완화합니다.
- 이 제품들은 국소 마취제(리도카인)와 함께 알란토인(조직 재생 촉진), 클로르헥시딘(소독·살균), 레티놀유(마찰 감소·조직 재생) 등이 복합적으로 들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 항문 주위 조직이 찢어진 치열이 있다면, 조직 재생 작용이 있는 알란토인과 소독 성분이 포함된 제품이 도움이 됩니다.
급성 염증과 통증에 NSAIDs 계열
- 디클로페낙 성분의 연고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로, 염증 유발 물질의 생성을 막아 통증과 부기를 줄여줍니다.
- 2022년 대한대장항문학회지 연구에 따르면, 디클로페낙 연고 사용 환자의 78%가 3일 이내에 통증이 50% 이상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 다만 장기간 사용하면 피부가 얇아지거나 트러블이 생길 수 있으니 단기간 사용에 적합합니다.
내치핵에는 좌약, 어떤 성분이 좋을까
내치핵은 환부가 항문 안쪽에 있어 연고보다 좌약이나 주입 연고 형태가 사용하기 편리합니다. 좌약은 해열제 좌약과 달리 치질 부위 피부에 작용해야 하므로 조금 얕게 주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입 후에는 약물이 다른 부위로 이동하지 않도록 잠시 누워 있어야 합니다.
좌약 성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 이부프로펜 좌약: NSAIDs 계열로 염증과 통증을 줄이는 효과가 확실합니다. 위장 장애가 상대적으로 적어 처음 사용하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2021년 국제대장항문학회지에 따르면, 좌약 형태가 경구용보다 직장 점막 내 약물 농도가 3배 이상 높게 유지된다고 합니다.
- 케토프로펜 좌약: 이부프로펜보다 항염 효과가 더 강력하지만, 위장 장애, 어지러움, 구역감 같은 부작용이 더 흔합니다. 2023년 식품의약품안전처 부작용 보고 데이터를 보면 케토프로펜 좌약의 부작용 보고 건수가 이부프로펜 좌약보다 약 1.7배 많았습니다.
- 스테로이드 좌약(하이드로코르티손 등): 염증 반응을 강력하게 억제하지만, 장기 사용 시 직장 점막이 얇아질 수 있어 1주일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약국약으로 해결되는 정도와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연고와 좌약은 가벼운 증상의 치핵(1-2도) 및 급성 치열에만 해당됩니다. 아래 기준에 해당하면 하루라도 빨리 대장항문외과를 방문해야 합니다.
- 3도 이상 치핵: 손으로 밀어 넣어야 돌출 부위가 들어가는 정도
- 만성 치열: 항문 주위 조직이 계속 손상되는 경우
- 치루: 항문 주위 염증이 곪았다 터지는 것이 반복되며 고름이나 분비물이 나오는 경우. 수술 외에는 치료가 힘들고, 전신 감염 위험이 있습니다.
2023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치질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연간 약 80만 명에 달하며, 대한대장항문학회 자료에 따르면 치질 환자의 약 20%는 수술이 필요한 중증이라고 합니다. 약만으로 해결하려다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복용약(경구제)도 함께 고려해야 할까
약국에는 연고·좌약 외에도 먹는 치질약이 있습니다. 이들은 바르는 제품과 달리 전신 혈관 건강에 접근합니다.
- 디오스민(치센 등): 플라보노이드 성분으로 느슨해진 정맥 혈관의 탄력을 높이고 모세혈관 투과성을 정상화합니다. 만성적으로 치질이 재발하거나 혈관이 약한 분에게 보조적으로 사용됩니다. 보통 하루 2회(점심, 저녁 식사 시) 복용하며, 급성기에는 약사와 상의해 용량을 늘릴 수 있습니다.
- 트록세루틴(뉴베인액 등): 모세혈관 세포 간격을 좁혀 정맥 탄력을 높이고 림프 순환을 도와 부종을 빠르게 빼줍니다. 급성 부종이 심할 때 단기간 병용하기 좋습니다.
- 생약 성분 제제(치지래과립 등): 목단피, 자근, 서양칠엽수종자 등이 포함되어 울혈을 풀고 혈액 순환을 촉진합니다. 배변 시 피가 잦고 잔변감이 있는 분에게 보조 요법이 됩니다.
주의할 점: 임신 초기(첫 3개월)에는 디오스민 제제 복용을 피해야 하며, 생약 성분 제제는 자궁 수축 우려가 있어 임부나 임신 가능성이 있는 분은 반드시 약사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치질약 사용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
기저질환이 있다면?
- 고혈압, 심장질환, 당뇨,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있는 경우, 혈관수축제 성분(페닐에프린 등)이 포함된 제품은 사용 전 약사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 위궤양 환자는 NSAIDs 계열 약물(디클로페낙, 이부프로펜 등)이 위장 출혈 위험을 높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사용 기한은?
모든 치질약은 일시적 증상 완화를 위한 것입니다. 1-2주 이상 사용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거나, 출혈이 심해지면 반드시 병원을 방문하세요.
생활 습관 개선이 함께해야 하는 이유
치질약을 아무리 잘 발라도 변비, 장시간 앉아 있기, 수분 부족 등 나쁜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재발하기 쉽습니다. - 미온수 좌욕: 38-40도 따뜻한 물에 항문을 5-10분간 담그는 좌욕을 하루 1-2회 실천하면 괄약근 이완과 혈액순환 개선에 큰 도움이 됩니다. 쪼그려 앉지 말고 변기 형태의 좌욕기를 사용하세요. - 화장실 5분 룰: 배변 신호가 올 때만 가고, 5분 이내에 마치는 습관을 들이세요. 스마트폰을 보며 오래 앉아 있으면 항문 혈관이 쉽게 늘어납니다. - 식이섬유와 수분: 대변이 딱딱하면 항문을 자극해 치질이 악화됩니다. 충분한 수분과 식이섬유를 보충해 변을 부드럽게 유지하세요.
FAQ
Q. 연고와 좌약을 동시에 사용해도 되나요? A. 항문 바깥쪽과 안쪽 모두 증상이 있다면 병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 약사나 의사와 상담 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좌약을 넣고 바로 일어나도 되나요? A. 치질 좌약은 해열제 좌약과 달리 치질 부위 피부에 작용해야 하므로 얕게 주입한 후 약 1-2분간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는 것이 좋습니다. 바로 일어서면 약물이 다른 부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Q. 임신 중에도 치질약을 사용할 수 있나요? A. 임신 초기(첫 3개월)에는 디오스민 계열 경구제와 자궁 수축 우려가 있는 생약 성분 제제는 피해야 합니다. 외용제라도 임산부나 수유 중인 분은 의사나 약사와 반드시 상담 후 사용하세요.